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펠 탑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에펠 탑_1888년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건설 중인 에펠 탑의 모습 (1888)'''[* [[1888년]] 당시 촬영한 흑백필름 사진을 컬러로 복원한 것이다. 흑백필름을 고해상도로 스캔하였기에 화질이 제법 좋아 보인다.] || 프랑스가 [[프로이센-프랑스 전쟁]]에서 [[독일]]에게 패한 치욕을 만회하고 '''[[국력]]을 과시'''하기 위해 [[엑스포|1889 파리 엑스포]]에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졌다. 특히 [[영국]]이 자랑하는 최신 건물이었던 [[수정궁]]과 [[세인트 판크라스역]]을 의식하여 기둥간의 거리를 115m로 늘린 기계관(판크라스 역은 73m)과 300m 높이의 에펠 탑을 선보였으며, 일종의 [[기술]]을 과시하는 용도였기 때문에 원래는 20년간 설치했다가 해체할 예정이었다. 사실 건축적인 의의는 기계관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대중이 느끼는 시각적인 충격은 에펠 탑이 압도적으로 뛰어났고, 결국 우여곡절 끝에 '''에펠 탑만이 살아남았다.''' [[마천루]]가 즐비한 오늘날에는 잘 느끼기 어렵지만, 약 169m의 구조물인 [[워싱턴 기념탑]], 161m의 건축물인 [[울름 대성당]]이 가장 높던 시절에 등장한 300m의 타워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. [[인류]] 역사상 이토록 [[인간]]의 구조물의 고도가 '갑자기' 올라간 적이 없었다. 특히 [[철]]을 가지고도 고전적 [[건물]]을 모방하기 바뻤던 [[시대]]에 철골을 당당하게 드러낸 에펠 탑의 위용은 마치 새로운 신 [[건축]]의 시대를 선언하는 듯 하였으며, 이는 에펠 같이 [[토목]] 분야에서 활동하던 구조 공학자들이 일반적인 [[건축가]]보다 산업시대의 새로운 재료들을 더 빠르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진보다. 에펠 탑은 건설비가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, 그 대부분을 에펠이 냈고 대신 20년간 독점권을 인정받았다. 하지만 욕먹는 걸 참아가며 만든 보람이 있어서, 에펠의 예상대로 3년 만에 투자비를 다 뽑아냈다.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는 20년 후에 철거될 예정이었지만, 그냥 철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에펠의 설득과 송신탑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어[* 송신 안테나의 특성상 높은 곳에 설치해야 했는데, 파리 시내를 가보면 알겠지만 건물들 높이가 어째 다 '''고만고만'''하다. 심지어 나중에 지어진 [[몽파르나스 타워]]도 겨우 '''209m''' 밖에 안 된다. 그러니 그 중에서도 제일 높은 에펠 탑에 설치하게 된 것.] 한 [[프랑스 육군]] 고위층의 결정으로 살아남게 되었고, 그렇게 쭉 있다 보니 결국엔 어느덧 파리 시는 물론 [[랜드마크|프랑스 전체의 상징]]이 되었다. 그야말로 격세지감. 이후 [[프랑스 육군]]의 결정대로 [[1914년]] [[제1차 세계대전]] 당시 통신 중계탑으로 잠시 쓰이다가, [[1925년]] 첫 [[라디오]] 방송을 시작했고, 이후 [[TV]] 방송용으로도 쓰여왔다. [[21세기]]에도 계속 [[방송]] 중계탑으로 역할을 했는데, 점차 케이블 선을 이용한 [[디지털 방송]]이 확대됨에 따라 기념탑으로만 남게 될 [[가능성]]이 높다. 물론 군용 송신탑으로는 계속 쓰일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